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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칼럼] 벡델 테스트 사용법에 대하여 (조혜영 영화평론가)

작성자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작성일
2021-07-27 15:16
조회
470

벡델 테스트 사용법에 대하여

조혜영 영화평론가

영화에서 성인지 감수성이 주요한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해당 영화가 얼마나 성평등한지를 평가할 수 있는 간편한 테스트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는 그중 가장 잘 알려져 있는 테스트이다. 이 테스트는 그래픽 노블 작가 앨리슨 벡델(Alison Bechdel)이 1985년 연재한 만화 <눈여겨 볼만한 레즈비언들Dykes for Watch Out For>의 “규칙(The Rules, 1985)” 에피소드에 처음 등장한다. 이 에피소드에서 벡델의 친구 리사 월리스는 볼만한 영화를 고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말한다. 다음의 세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 이름을 가진 두 명 이상의 여성이 등장하는가?
- 그 두 명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가?
- 그 대화의 주제가 남자 이외의 것인가?

벡델 테스트가 등장한 이후에 여러 다양한 페미니즘 영화 비평 방법론과 성별균형 및 다양성을 수치로 측정하는 연구조사방법이 제시되고 적용되었다. 그러나 3개의 질문으로 통과 여부를 가리는 단순하고 손쉬운 특징 덕에 벡델 테스트는 현재까지도 가장 인기 있는 성평등 테스트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벡델 테스트는 폭 넓은 유용성과 더불어 그 한계 또한 꾸준히 지적되어 왔다. 그 한계는 이미 벡델 테스트가 처음 소개된 에피소드에서도 스스로 지적하고 있다. 앨리슨이 리사의 기준이 훌륭하다고 하자, 리사는 동의하면서도 “지난번에 내가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영화는 <에이리언>이었어. 그 영화에서 여자 둘이 괴물에 대해 얘기하지”라고 우울하게 말한다. 둘은 영화보기를 포기하고 집에서 팝콘이나 만들어 먹자고 한다.



둘의 마지막 대화는 두 가지를 말한다. 첫째, ‘서사의 진행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여성 캐릭터가 둘 이상 존재하는가’라는 기준에 맞는 영화가 거의 부재하는, 성별 불균형한 당시 할리우드의 현실을 드러낸다. 1980년대 할리우드는 근육질 남성의 액션영화와 여성들과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저예산 공포영화가 유행하던 때였다. 이런 최소한의 기준조차 통과하는 대중 영화가 거의 부재했기 때문에 기준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떤가? 물론 1980년대보다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는 영화는 증가했다. 2020년 오스카 주요 수상작 10편 중 6편이 벡델 테스트를 통과했다(<주디>, <밤쉘>, <작은 아씨들>, <조조 래빗>, <결혼이야기>, <기생충>). 그러나 BBC는 1929~2018년 동안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의 벡델 테스트 통과비율은 49%에 불과하고, 심지어 2010년대보다 1930년대의 통과비율이 더 높다고 보도했다(BBC, “100 Women: How Hollywood fails women on screen” 2018.3.2.). 성별 균형의 관점에서 보면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국영화는 어떨까? 2009년부터 2018년까지 매해 흥행 50위 내에 든 작품들을 조사한 결과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비율은 50.6%였다. 2009년보다 2018년 통과비율이 더 나아진 것도 아니었다. 벡델 테스트는 성평등과 성별균형을 가리는 결정적 테스트가 아니라 캐릭터 개발이 최소한이라도 되어 있는 여성인물이 있는지를 가리는 기준이기 때문에 통과 비율이 70~80% 이상이 되는 것이 적당하다. 이 기준을 맞추기 전까지 벡델 테스트는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앨리슨과 리사의 대화에서 알 수 있는 벡델 테스트의 또 다른 한계는 테스트를 통과한다 해도 그 영화가 성평등하다거나 페미니즘적이라고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벡델 테스트는 비평도, 엄밀한 사회학적 연구조사 방법론도 아니다. 오히려 개별 영화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맥락을 깊이 있게 살필 수 있는 밀도 있는 비평이 함께 하며 담론을 풍부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 비평이 벡델 테스트를 하나의 비평적 자료나 도구로 활용할 수는 있지만, 당연히 벡델 테스트가 비평을 대체할 수는 없다. 성평등이나 페미니즘이 그렇게 단순한 담론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테스트는 연령에 따라 콘텐츠의 유해성이나 수용가능성 정보를 알려주는 영화등급제도처럼 일종의 정보 제시라고 할 수 있다.1 혹은 일정 기간이나 일정 지역의 영화들이 성별 편향성과 관련해 어떠한 경향성을 띠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최소한의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최근에 와서는 이 최소한의 기준에 여러 다른 조건들을 덧붙여 조금 더 정교한 테스트를 만드는 시도들이 있다. 벡델 테스트는 이분법적인 성별에 근거하기 때문에, 넌바이너리(Non-binary) 같은 제3의 성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소수자를 포함해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정체성의 가시성 여부를 포함시키는 테스트가 부상하고 있다. 또 다른 경우는 이름이나 대사가 있는 여성 캐릭터가 있는지를 넘어서 서사를 주도하는 캐릭터의 성별이 무엇인지2, 여성이나 다른 소수자 캐릭터들의 재현이 편견 속에서 정형화되거나 남성 캐릭터의 서사를 위해 도구화되지는 않는지를 묻는 테스트들이 있다. 더 나아가 스크린 위의 재현과 더불어 창작자의 성별이나 다른 소수자적 정체성을 묻는 테스트도 늘어나고 있다.3

한편 벡델 테스트 질문에서 성별 구분과 이름 및 대화의 유무는 시대 및 지역의 문화적 맥락에 따라 재규정할 필요가 있다. 성별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여성과 남성으로만 나눌 경우 성소수자를 배제하게 되며, 인간 외의 생물들-외계인, 안드로이드, 동식물, 차와 장난감 같은 무생물 등-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할 경우 인간의 성별 분류법이 잘 들어맞지 않거나 아예 성별의 개념이 부재할 수도 있다. 또한 한국영화에서 이름의 경우 엔드 크레디트에는 구체적으로 표기되어있으나 정작 영화에서는 제대로 불리지 않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한국 문화가 친구 사이가 아니면 이름을 호명하는 것이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인공인데도 영화의 특성상 직업이나 신분으로 이름을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 무명씨를 표방하는 고독한 킬러나 몰개성적인 디스토피아 세계를 다루는 영화에서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대화의 경우 ‘안녕하세요?’와 같은 단순한 인사나 ‘네’ 같은 응답만 있다면 그것을 대화로 고려할 것인가? 그 대화의 유무만을 평가한다면 이것은 대화라고도 할 수 있지만, 여기서 질적 평가는 배제된다. 어떠한 질문이 제기되고 무엇이 부족하게 여겨지느냐를 주목해 보면, 벡델 테스트는 시대와 지역의 변화에 따라 성평등 혹은 성별 균형 그리고 더 나아가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도 있다.

아마도 영화산업에서 성별균형이 이뤄지고 다양성이 확보된다면, 최저 기준인 벡델 테스트의 효용성도 점점 더 낮아질 것이다. 그 날이 오기를 기다려 본다.
1 이러한 벡델 테스트의 성격을 최대한 활용한 사례가 스웨덴의 ‘A-list’와 영국의 ‘F-Rated’ 캠페인이다. 스웨덴의 한 극장은 상영영화 중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에 ‘A(Approved)’를 달아주는 캠페인을 벌여 관객에게 성별균형과 관련해 유용한 정보제공 서비스를 시도했다. ‘F-Rated’ 단체는 여성 배우/감독/작가가 맡은 영화에 ‘F’ 등급을 주는 캠페인을 시도해 화제가 되었다. 후자는 영화산업 내에서 창작자의 성별균형을 맞추는 데 더 초점을 두고 있다.
2 예를 들어, 영화의 3분의 2를 우주에 홀로 낙오된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 산드라 블록이 혼자서 끌고 가간 <그래비티 Gravity>(알폰소 쿠아론, 2013)는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서사의 주도 여부를 묻는 질문이 포함된 테스트가 더 각광받고 있다.
3 한국영화감독조합은 2020년 제1회 ‘벡델데이’를 개최하면서 다음과 같은 업데이트 버전을 제시했다. 벡델 테스트의 3가지 조건에 다음의 4가지를 덧붙였다. 감독/제작자/시나리오작가/촬영감독 중 1명이 여성일 것, 여성 단독 주인공이거나 남성 주인공과 비등한 비중의 역할을 여성이 맡을 것, 여성 캐릭터가 스테레오타입으로 그려지지 않을 것, 소수자에 대한 혐오나 차별적 시선을 담지 않을 것.


조혜영 영화평론가

다수의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으며 <프로젝트38> 연구원으로 영화와 디지털 미학에 대한 글을 쓰고 가르치고 있다. 『한국영화성평등 정책수립을 위한 보고서』 책임연구를 맡았으며, 공저로 『원본 없는 판타지』, 『을들의 당나귀 귀』, 『소녀들: K-pop, 스크린, 광장』,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오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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